본문 바로가기 대메뉴 바로가기

서천군청

 
문화해설사가 들려주는 서천이야기 - 월남 이상재선생 글의 상세내용

『 문화해설사가 들려주는 서천이야기 - 월남 이상재선생 』글의 상세내용을 확인하는 표로 제목, 작성자, 등록일, 첨부(으)로 나뉘어 설명합니다.

제목 문화해설사가 들려주는 서천이야기 - 월남 이상재선생
작성자 정책기획실 등록일 2016-06-28 조회 5643
첨부 jpg 파일명 : 문화해설사가 들려주는 서천이야기 - 월남 이상재선생.jpg 문화해설사가 들려주는 서천이야기 - 월남 이상재선생.jpg 바로보기
?atchFileId=FILE_000000000122309&fileSn=0 문화해설사가 들려주는 서천이야기 - 월남 이상재선생.jpg
월남 이상재 선생 홍보영상

문화해설사가 들려주는 서천이야기
청년이 나라의 보배요, 천하의 보배이다 ?월남 이상재 선생편


영상타이틀
-문화해설사가 들려주는 서천이야기

월남 이상재 선생 육성 자료


프롤로그
청년층을 중심으로한 교육에 전념하며 청년들에게 패기와 긍지를 심어주고
항일 민족 독립운동도 감행한 서천군의 자랑스러운 인물 월남 이상재 선생
영원한 청년이고자 한 그의 유훈을 새기러 떠나보자.
→ 청년이 나라의 보배요, 천하의 보배이다 ?월남 이상재 선생편


Na : (꽃이 예쁘게 핀 길을 걷는 장면)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에 위치한 월남 이상재 선생 생가지를 가는 길입니다.
활짝 핀 꽃길을 걸으니 시작부터 기분이 좋은데요.
오늘 특별한 누군가를 만나기로 해서 그런가 봅니다.

(입구에서 만나서 인사)
리포터 : 선생님 안녕하세요.
네, 오늘 만나 뵙기로 한 김희주입니다. 오늘 선생님께서 월남 이상재선생님에 대해 알려주신다고 하셨는데 너무 궁금해요. 들어갈까요?


* 자막 ? 안정심해설사
해설사 : 네, 이쪽으로 오세요.

Na : 해설사 선생님께서 저를 먼저 데리고 간 곳은 바로 이상재 선생이 태어나고 18살 때까지 자랐던 생가지인데요.
일자형태의 사랑채와 안채를 중심으로 이뤄진 전체 미음자 형태의 초가집입니다.

해설사 :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중부지방의 초가형태인데요.
대부분 사랑채 안채를 중심으로 해서 일자형 일자형으로 나눠지고요.
양쪽좌우로 필요에 따라서 배치되는 미음자 형태의 집입니다.



Na : (해설사 선생님과 대화하면 둘러보는 장면) 생가지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며 이상재 선생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해설사 : 사회운동가시고요. 계몽가이셨고요. 또 종교가셨고 그리고 독립운동가 또 민족운동가. 여러다방면 교육자시고요. 다방면으로 불려 지시는데요.



Na : (관련자료 장면) 이상재 선생은 가장 먼저 나라가 강하려면 젊은이들이 강해야 한다는 걸 우선으로 여겨 청년 교육을 가장 중시 하셨다고 합니다.
YMCA에 들어가 유도부를 창설하고 상업, 공업을 중요시여기면서 젊은이들에게 기술양성교육을 하는 등 현대스포츠 및 현대교육을 청년들에게 가르치셨다고 하는데요.
또 교육과 독립은 별개가 아니라며 교육을 강조하시면서 그 내면에 독립심과 민족심을 심어주셨다고 합니다.
그러던 선생이 70세가 되던 해 3.1운동이 일어납니다. 독립협회를 조직했던 독립운동가셨지만 폭력으로 하는 운동은 우리 민족이 떳떳할 수 없고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 할 수 없다며 우리나라가 영광스럽게 남길 수 있는 비폭력 무저항 운동을 남겨 주셨습니다.
이렇게 민족의 횃불이셨던 월남 이상재 선생이 타계를 하시게 되는데요.

해설사 : 당시 일제치하였는데요. 민족의 거목이 돌아가신 거죠.
걷잡을 수 없는 물결이 저절로 일어난 거예요.
우리나라 단군 이래 최초의 사회장이 저절로 일어났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Na : 이상재 선생의 장례는 당시 일제치하 라는 상황 속에서도 국민들의 의해 저절로 일어난 사회장으로 치러졌는데요. 조선총독도 제지할 수 없었던 우리민족의 운동이었다고 합니다. 정말 대단하네요.
이번엔 생가지 바로 옆 유물 전시관으로 이동했는데요. 도착해보니 많은 분들이 이미 전시를 관람하고 계셨답니다. 저도 함께 유물관에 전시된 물건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관람을 했습니다.
살아생전 쓰셨던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더라고요.
그 중에서 유물관 입구 벽면에 쭉 전시된 이 글귀는 만장이라고 하는데, 종이나 비단에 돌아가신 분에 대한 추모하는 글을 적은 거래요.
당시 깃발처럼 만든 만장행렬의 규모가 고인의 지명도를 나타냈다고 하는데 월남 이상재 선생은 당시 거주하셨던 종로에서부터 지금의 서울역까지 만장의 행렬이 쭉 이어졌다고 합니다.
해설사 선생님의 설명을 모두 듣고 나니 마음속에 자부심이 샘솟는 듯 했습니다.

Na : 서천군에서는 이상재 선생의 뜻을 기리며 동상을 세우고 이상재문화재를 개최하며 매년 추모식을 거행하는 등 다양한 행사로 선생을 기억하고 있는데요. 벌써 89주기를 맞았다고 합니다.
아쉬움이 남아 조금 더 둘러보던 중 비석 앞에 발길이 멈추었습니다.
이 비석은 선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서 1975년에 월남 이상재선생 추모비 건립추진위원회에서 건립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선생의 청렴함과 청년정신을 가슴속에 새기며 오늘 일정을 마무리 합니다.


에필로그
청년이 나라의 보배요, 천하의 보배이다
청년의 소중함과 청년 교육에 앞장 선 서천군의 자랑스러운 위인 월남 이상재 선생
영원한 청년이길 바라던 그는 우리의 가슴 속 청년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목록

게시판 이전 및 다음 링크

미디어_주요관광의 이전글과 다음글을 보여주는 설명하는 표입니다.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