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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전쟁시대 이순신을 만나다 - 지용희 글의 상세내용

『 경제전쟁시대 이순신을 만나다 - 지용희 』글의 상세내용을 확인하는 표로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 첨부, 내용으로 나뉘어 설명합니다.

제목 경제전쟁시대 이순신을 만나다 - 지용희
작성자 수강생 등록일 2005-04-09 조회 6943
첨부  
경재전쟁시대 이순신을 만나다
-지용희
경재전쟁시대 왜 이순신인가?

·이순신의 정신·리더쉽전략으로 무장하면 어떠한 경제전쟁에서도 반드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자원이 부족한 나라이므로 경재전쟁에서 이겨야 한다. 이순신을 만나면 반드시 이긴다.

·거북선 농업의 사례-신지식인 농민회회장 정운천
"나는 다시 거북선을 생각한다. 덮개라는 독창적 가치를 창출해 목선과 차원이 다른 거북선을 만든 것처럼, 농업분야에서도 지금까지와는 차원을 달리할 수 있는 독창적인 가치를 개발하고자 한다. 이것이 거북선 농업이다."
1981년 키위 재배로 농업에 입문한 이래 23년 동안 농업의 한 길을 걸어오면서 우리 농업의 발전 방안을 제시하고 경험을 토대로 한 쌀시장 개방에 대비한 대응책과 과일, 채소, 축산 등 주요 품목별 발전 전략과 우리 농업의 중심축인 농협을 위기 극복의 주체세력으로 개혁하는 방안을 제시함.
※ 리더쉽은 어렸을때무터 발휘해야하며 어려서부서 봉사·리더쉽교육훈련을 시켜야 한다.

이순신의 전적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 발발
1592. 5 옥포, 합포, 적진포
1592. 6 사천포, 당포, 진해, 당항포, 율도
1592. 7 한산도<학날개 전법>, 안골포
1952. 9 부산포
1593. 5 웅포
1594. 9 진해
1597. 9 명량
1598. 8 절령도,예교
1598.11 노량. 7년간의 임진란이 종식됨
▷17전 17승 - 적선 794척(20척나포)
일본에서는 “절대 조선함대와는 싸우지 말라”

조선과 명나라 침공을 위한 일본의 총 병력은 30만7천여명으로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좋은 조총으로 무장하였다.


이순신에 대한 일본의 평가

일본의 국민 작가로 일컬어지는 시바료타로[司馬遠太郞]가 《언덕 위의 구름》이라는 저서에서 이순신 장군에 대해 서술한 대목이다. 이순신에게 참패한 일본 사람들은 악조건 하에서도 17전 17승을 한 이순신의 업적과 전략을 깊이 연구했으며 그를 존경해 마지않았다. 뿐만 아니다. 경상남도 진해에 일제의 해군 사령부가 있었을 때 그들이 중요시했던 연중행사 중 하나는 남서방 약 40km의 통영 충렬사에서 지낸 이순신의 진혼제였다. 일본 해군성은 예산서의 한 항목으로 경비를 계상(計上)하고, 사령부의 장병은 당일 통영까지 가서 제를 거행했다. 이순신은 적과 아군을 뛰어넘어 진정한 ‘군신’으로 존경받았던 것이다.


이순신은 침략군 일본군의 함대를 격침시키고 나라를 구한 조선의 장군이고,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는 러시아의 무적함대인 발틱 함대를 격침시킨 일본의 해군 사령관이다. 그리고 넬슨은 나폴레옹 함대를 격파한 영국의 제독이다. 이들 세 사람의 공통점은 모두 최악의 조건에서 싸워 승리를 거둠으로써 조국에 승리를 안겨준 해군 지휘관들이라는 것이다.
러일전쟁에서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이 러시아의 발틱 함대를 격침시킨 후에 사람들이 그를 칭송하기를 영국의 넬슨 제독과 같고, 조선의 이순신 장군과 같은 명장이라고들 하였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를 넬슨 제독과 비교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순신 장군과 비교하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영국의 넬슨 제독은 군신(軍神)이라고 부를 만한 인물이 못 된다. 세계의 해군 역사에서 군신으로 존경받을 수 있는 제독이 있다면, 그는 이순신뿐이다.”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은 이순신을 단지 전쟁에 탁월한 장군으로만 보지를 않고 전인적인 인격자로 평가함으로써 그를 숭상하였다. 그리고 그는 러시아 함대와의 해전을 앞둔 자리에서 이순신 장군의 혼령에게 도와 달라고 기도를 드리기까지 하였다.

근세 일본사에서의 평가
“이순신은 이기고 죽었으며, 죽고나서도 이겼다. 조선전쟁 7년간에....
동양3국을 통하여 최고의 영웅이었다”

이순신 : 영원히 새로운 리더십의 표상
· 인력·배·무기·식량부족, 모함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17전17승일 이끌어낸 위대한 리더임
· 농부,오부,종,패잔병을 이끌고 무적함대를 만듦
·“장군이 다시오시니 우리들은 이제 살게되었다”
· 군인,피난민들이 빈소의 장군을 따라나서고 자발적으로 도움을 줌
“피난민들이 길가에 늘어서서 다투어 술병을 가져다 바치는데 받지 않으면 울면서 강제 로 권하였다” 라고 기록됨.

손자병법이 영원히 새로운병법이라면, 이순신은 영원한 리더십의 교과서다

<좌의정 한음 이덕형의 보고서>
“이순신의 사람됨을 신이 직접 확인해 본 적이 없고 한 차례 서신을 통한 적 밖에 없었으므로, 그가 어떠한 인물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전일에 원균이 그의 처사가 옳지 못하다고 한 말만 듣고, 그는 재간은 있어도 진실성과 용감성은 남보다 못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신이 본도에 들어가 해변 주민들의 말을 들어 보니, 모두가 그를 칭찬하며 한없이 아끼고 추대하였습니다. 또 듣건데 그가 금년 4월에 고금도(古今島)에 들어갔는데, 모든 조치를 매우 잘하였으므로 겨우 34개월이 지나자 민가와 군량의 수효가 지난 해 한산도(閑山島)에 있을 때보다 더 많았다고 합니다. 그제서야 그의 재능이 남보다 뛰어난 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신은 유제독(劉提督, 주:명나라 육군 제독)이 힘을 다해 적과 싸우려는 뜻이 없다는 걸 간파한 뒤에는, 국가의 대사를 전적으로 수군에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신이 주사(舟師:수군)에 자주 사람을 보내어 이순신으로 하여금 기밀의 일을 주선하게 하였더니, 그는 성의를 다하여 나라에 몸바칠 것을 죽음으로써 스스로 맹서하였고, 영위하고 계획한 일들이 모두가 볼 만하였습니다. 따라서 신은 나름대로 생각하기를 ‘국가가 주사의 일에 있어서만은 훌륭한 주장(主將)을 얻어서 우려할 것이 없다’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가 전사하였으니 앞으로 주사의 일을 책임지워 조치하게 하는 데 있어 그만한 사람을 구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참으로 애통합니다. 첩보가 있던 날 군량을 운반하던 인부들조차 이순신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무지한 노약자라 할지라도 대부분 눈물을 흘리며 서로 조문하기까지 하였으니, 이처럼 사람을 감복시킬 수 있었던 것이 어찌 우연한 것이겠습니까.” (&#43092;선조실록&#43093; 선조 31년 12월 7일 무오조).

리더쉽의 원천
·신뢰성 -몰입과 솔선수범, 책임의식, 유비무환의 정신
·공정성 - 부당한 압력거부
·도덕정신과 위기관리능력
·창의성 및 혁신추진의지 - 거북선과 신제품개발
·행심역량
이순신은 대기만성형으로 끊임없는 노력을 하였다
백전백승의 비결은 적의 허점 기습, 만전에 대비, 유비무환의 정신임


5차원 리더십
1차원 :뛰어난 업무능력
2차원 : 팀워크 기여
3차원 : 유능한 관리자
4차원 비전제시 및 동기부여능력
5차원 : 조직을 위한 몰입과 헌신+겸손
위대한 성과의 원천
창문과거울(다 니덕이다, 다 내탓이다)
“명량해전에서 이긴것은 천운이었다”

우리의 과제 - 이순신의 자살설과 이순신 생태계조성
<자살설>
그가 전사한 직후부터 그의 자살설이 제기되기시작
·이순신의 부하 유형에 따르면 이순신은 평소에“자고로 대장이 자기의 공로를 인정받으려 한다면 생명을 보전하기 어렵다 따라서 나는 적이 퇴각하는날에 죽어 유감될 일을 없애겠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명나라수군제독 진린은 이순신을 축모하면서 “추억하건데 평시에 사람을 대해이르되”나라를 욕되게 한 사람이라 오직한번 죽는것만 남았노라“하시더니 강토를 이미 &#52287;았고 큰 원수마저 갚았거늘 무엇 때문에 오리혀 평소의 맹세를 실천해야 하시던고.” 하였다

<생태계조성>
이순신이 어지러운 세태속에서도 나라를 위해 큰공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유성룡,조헌,이원직,정탁같이 자기의 불이익을 무릅쓰고 그를 적극 지원한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비록 자신과 가깝지 않고 때로는 자신에게 불이익이 돌아온다 해도 강직하고 능력있는 사람을 감싸주고 도와주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자기 이익에 눈멀어 훌륭한 사람을 모함하는데 앞장서거나 이런일에 함께 휩쓸리는 공범자가 되어서는 안되겠다
4백여년전의 나쁜 세태가 나라는 구한 한 영웅의 삶에 좌절을 안겼듯이 지금 우리는 또다른 이슨신을 죽이고 있지나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지금 많은 이순신을 살리지 않으면 우리는 또다시 경제전쟁에서 패할 것이다. 잘못된 역사는 절대로 되풀이 되어서는 안되며 이일은 우리모두의 손에 달려있다.




여기까지는 문화학당 강연내용을 메모하였&#46207;다가 두서없이 올렸습니다
오늘 강의를 위해서 아침부터 나서서 왔는데 대충하고 갈수 없다하여
늦은시간까지 강의를 해주신 지용희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지용희 교수님의 저서“ 경재전쟁시대 이순신을 만나다”를 읽으시면
더욱 자세한 내용으로 친밀하게 만나실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저자소개 - 지용희>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하고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버클리에서 경영학 석사(MBA), 워싱톤 주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서강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중이며 한국경영연구원 이사장, 한국벤처포럼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서강대학교 경영대학장, 경영대학원장 및 국제대학원장을 역임했으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 대통령 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 중소기업은행 이사,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이사를 역임했으며 2003년 녹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 <최신무역개론>, <중소기업론> 등이 있다.

<이순신장군 소개>
장군께서는 1545년에 태어나셨다. 형제들은 羲臣(희신),堯臣(요신) 두 형과 禹臣(우신)이란 동생 하나를 두었다. 그는 31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한동안 북방에 수비를 맡았으나, 1587년 이일의 모함으로 파직 되었다. 1591년 유성룡의 천거로 전라 죄도 수군 절도사가 되자, 전쟁의 대비하여 병기를 수선하고 거북선을 건조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포,사천,한산도 등에서 왜선들을 격파했으며, 안골포, 부산포에서 크게 승리하여 그 공으로 삼도 수군 통제사가 되었다. 그러나 1597년 모함으로 투옥되었다가 정탁의 변호로 풀려 나 백의종군하게 되었다. 정유재란으로 원균이 참패하자, 다시 수군 통제사에 임명되어 12척의 병선으로 131척을 격파한 명량대첩으로 크게 이기고,1598년 철수하는 왜군을 노량 앞바다에서 대파했는데 이 때 적의 유탄에 맞아 전사했다(54세). 죽은 뒤 "충무(충무공)"라는 시호가 내려졌으며, 저서로 《난중일기》와 시 20 여 수가 있다


<책머리>
경영학자 지용희 교수가 약 7년 간의 기획과 답사, 조사를 통해 완성한 책이다. 나라와 나라, 기업과 기업 간에 무한경쟁시대를 구가하고 있는 오늘날, 대한민국 리더의 표상인 이순신 장군의 행적에서 그 난세를 타개할 고금불변의 지혜를 배워 보자는 의도로 만들어졌다.

책속으로
‘이날 밤바람은 몹시 싸늘하고 차가운 달빛은 낮과 같이 밝다.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도록 뒤척거렸다. 온갖 근심이 치밀었다.’

 얼마되지 않는 병력과 물자로 막강한 일본 군대와 외롭게 싸울 수밖에 없었던 이순신 장군의 처지를 잘 말해주는 ‘난중일기’의 한 대목이다. 그러나 장군은 악조건에도 좌절하지 않고 역사상 유례가 없는 17전 17승을 이끌어냈다.

△정보수집과 활용
이순신은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기위해 남해안의 복잡한 지형과 조류를 훤히 꿰뚫고 있었다. 현장답사는 물론 피난민과 포로로부터 정보를 수집하고 정보원과 정탐선을 파견해 적의 규모와 이동상황을 세밀히 관찰했다. 충무공처럼 백전백승의 결과를 얻으려면 자신이 처한 환경을 면밀히 파악하고 자신과 상대방의 강약점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명량해전
- 단12척의 배로 200여척의 일본정예함대와 맞붙어 기적같은 불가사의한 승리를 이뤄냄
사전 정보수집(지형과 조류)과, 강한리더쉽이 일구어낸 승리라고 할수있다

△신뢰경영
이순신은 정직하고 원칙에 충실한 몸가짐때문에 주위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받았다. 출장갈 때 지급받은 쌀이 남으면 반드시 반납했고 정실인사를 거부했으며 장수로서 품위가 없다고 모함을 받을 정도로 부하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이순신은 신뢰재의 부자였던 셈이다.
“굳은 신뢰가 있어야 경쟁력있는 ‘가치창출공동체’를 구축할 수 있다”
“정직하고 투명한 기업경영과 계약의 철저한 준수를 통해 ‘신뢰재’를 쌓아야 한다”

△끊임없는 혁신
이순신은 배를 만드는 기술자는 아니었지만 임진왜란이 터지기 전에 이미 갖가지 혁신적인 무기의 제작을 주도했다. 그는 아군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전함개발에 주력한 결과 거북선을 탄생시켰다.
거북선의 특징 : 적의 강점인 조총을 무력화하고 적이 우리배에 올라와 칼싸움할 기회를 봉쇄하기 위해 만든 혁신제품
“현상에 안주하는 개인·기업·국가는 경쟁자에게 곧 추월당하고만다”
“끊임없는 개선과 혁신을 통해 남이 쉽게 겨냥하기 어려운 목표물로 변해야 한다”

 △ 기록정신
이순신은 임진왜란 7년의 와중에 일기를 써 귀중한 ‘난중일기’를 남겼다. 2539일간의 기록인 ‘난중일기’에는 전쟁에 관련된 많은 기록뿐 아니라 당시 사회상에 대한 자료까지 담고 있어 사료로서의 가치가 높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은 지금같이 경쟁이 치열한 때엔 ‘아는 것이 경쟁력’이라고 바꿔야 한다. 아는 것, 즉 지식이야말로 지식정보화시대의 경제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무기라며 저자는 지식기반 구축과 활용을 강조한다.
난중일기-2,539일간의 기록(임진왜란부터 7년),나랏일의 걱정으로 잠못이루는 대목이 많음

이밖에 유비무환의 자세와 위기관리능력, 솔선수범과 인간애에 바탕을 둔 리더십, 용기와 결단, 거북선을 개발한 창의성 등 이순신 장군이 보여준 탁월한 경영원칙과 전략을 소개한다. 이순신의 이러한 정신과 전략은 오늘날의 무한 경제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꼭 필요한 것으로 실제 위대한 기업가와 기업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특징들임.
이순신의 수군을 무적 함대로 만든 또 하나의 비결은 "신뢰"였다고 池교수는 강조했다. 백의종군 후 맨손으로 시작한 이순신은 왜군이 휩쓸고 간 폐허를 누볐다. 민심을 수습하고 패잔병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이순신이 나타났다는 말에 도주했던 패잔병이 모여들었다. "이순신 장군은 청렴결백.공평무사.정직을 몸으로 실천했기 때문에 백성과 군사들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신뢰를 얻지 못한 기업가는 작은 전투에서 이길지 모르나 전쟁에선 승리할 수 없습니다." 지용희 교수는 중학교 1학년 시절 역사 선생님이 "최악의 조건에서 백전백승한 이순신 장군이 결국은 자살했다"는 말을 들은 다음부터 이순신 추앙자가 됐다. 20여년 간 이순신의 유적지와 격전지를 돌고 일본까지 건너가 모아온 사료를 바탕으로 첫 이순신 연구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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