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보존가치 없는 장항제련소 굴뚝’ 제하로 이곳 게시판에 글을 올리신 분의 의견을 반박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는 점을 먼저 밝힙니다.
장항제련소 굴뚝이 1979년에 일제가 설치한 굴뚝을 철거하고 새로 만든 굴뚝이므로 역사적 가치가 없고, 흉물스러울 뿐이므로 철거해야 한다는 개인의 의견은 소중한 의견입니다.
하지만 저는 또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장항’하면 제일 먼저 뇌리에 떠오르는 장면이 ‘장항제련소 굴뚝’입니다. 그만치 장항제련소가 가지는 장항의 역사성과 상징성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중화학공업의 기치를 들고 산업화에 성공하여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강국으로 성장하였고, 그 기반은 철강산업의 육성에 두고 있으며, 대한민국은 세계제일의 철강 생산국으로 발돋움 하였습니다. 1961년 군사혁명을 일으킨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이 '조국근대화'를 부르짖으며, 제일 먼저 방문했던 곳도 장항제련소였습니다.
우리나라 철강산업의 태동이며 상징인 곳이 바로 장항제련소이며, 장항제련소 하면 우리는 ‘제련소 굴뚝’을 연상합니다. 눈에 보이는 형태는 굴뚝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장항제련소 굴뚝만 가지고 그 가치를 논하기 보다는 ‘장항제련소’라는 역사의 상징성을 보다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보1호인 ‘숭례문(남대문)’을 예로 들면, 숭례문은 1396년 축조되었지만, 여러 차례 해체와 이동을 거쳐 아쉽게도 2008년 완전 소실되어 2013년 복원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국보1호로서 존재하고 있습니다.(물론 국보1호에 대한 이견도 존재합니다)
화재로 소실되던, 안전을 위해 철거후 신축을 하던, 문화재적 가치는 소멸되었다지만, 그 역사적 상징성과 가치마져 훼손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의 장항제련소 굴뚝을 일제시대에 설치된 굴뚝이라고 홍보하거나 교육시키지 않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설치되었던 제련소 굴뚝이 균열 등 안전에 문제가 생겨 1976년 철거후 신축했다고 사실대로 교육시키고 있습니다.
‘장항제련소 굴뚝’은 일제 강점기 수탈의 역사와 함께, 우리나라 철강산업의 태두로서 그 상징성은 충분합니다.
지금의 장항제련소 굴뚝과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한국 철강산업의 태동으로서 “역사박물관”을 설립하는데도 동의합니다.
‘코크스(coke)’를 아십니까?
용광로를 가열하는 연료입니다. 코크스는 석탄을 1,000도씨 내외로 가열하여 만드는 고체연료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코크스’가 생산되지 않아 당시 전량을 일본에서 배로 싣고 장항항에 도착하면, 인부들이 지게로 배에서 코크스를 실어 내려, 소달구지로 제련소로 옮겼답니다. 그 항만노동자들과 인부들로 장항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답니다.
이 제련소의 역사를, 제련소에서 일했던 산 증인들이 모두 돌아가시기 전에 박물관을 만들어 우리의 역사를 재현하고 보존해야 하지 않을까요?
장항제련소 역사(제련)박물관과 장항항 수탈의 역사-장항송림욕장-스카이워크-맥문동 장관을 연계하여 새로운 관광상품으로 개발하여, 연기 없는 산업인 ‘관광산업’을 통하여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면 1석2조가 아닐까요?
장항제련소 굴뚝을 배경으로 구인환(丘仁煥)서울대 교수, 고은(高銀)시인, 나태주(羅泰柱)시인 등이 소설과 시(詩)를 남겨 우리에게 낯익은 장항제련소 굴뚝입니다.
일제 식민지의 아픔을 간직하고. 조국근대화의 선봉이였던 장항제련소-국민학교 사회 교과서에도 그 사진이 실렸던 장항제련소 굴뚝은 서천군민들의 자존심의 상징이었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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