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가치에 대하여 섣부른 판단은 무지를 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역사와 문화의 인식은 아는 것 만큼 보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짧고 좁은 지식으로 역사의 가치를 함부로 또는 개인적인 억지로 재단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역사와 문화는 역동적으로 변하면서 발전합니다. 그 속에서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를 유형, 무형의 가치로 존재하면서 우리에게 전해주는 이야기가 곧 역사와 문화로 말하는 가치이기에 그 값은 양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자산이기도 합니다. 우리 주변에 한 조각의 기와, 질 그릇 파편도 우리 생활에 도움을 주지는 못하는 폐기물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폐기물인 그 조각 하나가 그 시대를 말하는 유물이 될 수 있고, 또한 그 시대의 역사를 분석하는 유일한 자료의 근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눈앞에 폐기물로만 보고 흔적 없이 치워졌다고 가정하면 그 곳에 남겨졌던 파편의 조각은 역사의 가치를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어찌 위험천만한 일이 아니라고 말하겠습니까?. 한산읍성, 서천읍성이 많은 훼손되어 일부 구간은 흔적 없이 사라진 곳도 있고, 흉물스럽게 남아 있고, 일부 성곽의 석재도 남아 있어 요즘 몇 년 전 부터 원형으로 복원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없어진 누각도 복원하였고, 향후 완전한 성곽과 누각을 복원하는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복원하는 과정에서도 약간의 위치와 편차도 생기게 마련입니다 당시의 석재도 아니고 다른 곳의 석재로, 누각은 한 조각의 목재도 당시의 목재를 사용할 수도 없습니다.
월남 이상재 선생 생가지도 옛 터에 있던 옛 집을 완전히 철거하고 새로운 목재로 원형을 살려 복원하여 문화재로 등록하였고, 주변을 더 확장하여 성역화를 하였습니다. 또한 기산면 영모리에 복설된 문헌서원의 경우도 최초에 사액을 받았던 장소는 한산면 고촌리에 있었으나,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하여 철폐되었으나 1969년도 서원 복설 과정에서 기산면 영모리에 이전하여 복설 하였고, 그 후 그곳이 협소하여 재실이 있던 아래로 또 이전하여 더 크게 확장하여 성역화를 기하였습니다. 또한 그 새로운 건물들이 이전 되었어도 그것이 갖는 역사의 가치가 그만큼 크기 때문에 문화재로 등록되어 관리하며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며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옛 장항제련소의 굴둑은 오랜 세월을 거쳐며 내구성을 잃어 새로운 굴둑을 세워야 하는 상황에서 제련소를 가동하면서 새로운 굴둑을 원형의 장소에 세우기는 불가능하여 다소 이동하여 세웠을 것입니다. 제자리에 없다 하여 역사의 가치가 없다는 논리는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장항제련소 시설물들이 운영하는 세월동안 많은 구조와 시설변경이 이루어진 곳도 많습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해방 뒤에도 꾸준히 운영되어왔던 장항제련소가 이러한 변형을 가져온 것도 역사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하겠습니다. 서천군청의 자리도 백제, 통일신라,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자리를 4번 이전하였고 또한 2023년도에는 새로운 군청사로 이전하게 됩니다. 이렇듯 장항제련소의 이전 된 굴둑의 존재도 역사가 갖는 가치는 참으로 비교할 수 없다는 것으로 생각하였으면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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