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문헌서원
정운일
충남 서천군 기산면에 4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문헌서원이 있다. 1594년(조선 선조 27)에 지방 유림들이 이곡(李穀)과 이색(李穡)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였으나 지금은 이종학, 이자, 이개, 이종덕 위패를 추가하여 모신 서원이다. 이색은 고려와 원나라에서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원과 고려 양국을 오가며 벼슬을 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0년 광해군이 문헌서원이란 사액을 내리고 우암 송시열이 현판 글씨를 썼다고 한다. 힘이 들어간 글자에서 필력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현판을 쓴 동기는 부인이 한산이씨로 처가와 인연이 있어 쓴 것으로 생각된다. 송시열은 도봉서원에 위패가 모셔 있고, 도봉산입구를 알리는 ‘도봉동문’이라는 그의 글씨가 바위에 새겨있어 도봉산을 찾는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필자는 문헌서원의 유래와 서원 내의 건물, 명당으로 알려진 묘소를 살펴보고자 한다.
주차장에서 걸어가니 옥으로 만든 이색선생의 좌상이 우리를 맞아준다. 바로 앞에 홍살문이 있어 신성한 공간임을 알 수 있다.
문에 들어서자 땅을 상징하는 네모진 연못이 있다. 정자 위에 도포를 입은 선비가 시조를 읊으면 낭만이 깃들 것만 같다. 서원 뒷산에 울창한 소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있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아름답다. 풍요로운 자연 속에 우아하게 자리 잡은 모습을 보니 마음까지 시원해진다. 오랜만에 시골 동네에 놀러 온 듯 한가로운 기분이다. 그냥 걷는 것이 아니라 해박한 나연옥 문화해설사의 설명이 곁들여져 흥미진진하다. 길게 이어진 콩 담장은 서원의 기와지붕과 붉은 소나무와 잘 어울려져 정겹기만 하다.
문헌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자 그 자리에 단(壇)을 설치하고 분향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전통역사마을 조성사업으로 중건되어 2013년에 다시 문을 열었다. 조선왕조와 근 현대를 거치며 수난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수난의 자취를 찾아볼 수 없고 평화롭기만 하다. 매년 음력 3월과 9월에 제례를 지내고 있다.
중요 건물로는 사우, 진수당(강당), 목은 영당, 재실, 전사청, 수호사, 내삼문, 외삼문, 장판각(도서관), 목은선생 신도비, 이종덕 효행비각 등이 있다. 사우에는 이색 등 6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진수당(강당)에 앉으니 천장 대들보와 서까래가 훤히 보여 고풍스럽다. 뒤쪽 벽면에 커다랗게 쓴 문헌서원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당시 유생들이 토론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진수당에서는 지금도 주민들이 모여 주 3회 성리학공부를 한다는 하니 전통역사마을답게 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서천주민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목은 영당은 이색선생의 영정이 모셔진 사당 이다. 뒤쪽에 350여년 된 배롱나무 두 그루가 양쪽에 서있다. 한 곳에 서서 선생의 올곧은 선비의 정신을 말해주고 있다.
장판각(도서관)에 이곡과 이색 선생의 ‘가정집’ ‘목은집’ 문집판이 보관되어있다. 안으로 들어서니 오래된 묵향이 스며들어 그 시절로 돌아간 듯 마음이 차분해진다. 목판 글씨는 붓으로 쓴 듯 정교하고 목판을 새긴 사람들이 정성이 담겨있어 친근감이 든다. 당시 장인들이 글자를 새기며 담소를 나누는 소리가 소곤소곤 들려온다.
기린산 기슭의 자리 잡은 선생의 묘소가 보인다. 무학대사가 자리 잡았다는 풍수적으로 빼어나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묘소주변 잔디밭은 축구장 몇 배나 되어 골프장으로 착각이 된다. 그 위를 걸어가면 마음이 안정되어 평온해진다. 잘 가꾸어진 잔디밭은 후손들의 정성과 효심이 들어있다. 잔디를 가꾸는 것은 잡초와의 전쟁을 치루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색은 69세에 여주 실륵사로 가기위해 예성강의 벽란도에서 배를 타고 한강으로 오르는 도중 죽음을 맞이했다. 배를 타고 있을 때 경기감사가 와서 태조 이성계가 하사했다는 술을 주었다. 이 술을 마시고 갑자기 배 안에서 숨을 거두었다. 술에 독약이 들어있던 것이다. 셋째 아들 이종선이 시신을 수습하여 한산으로 돌아와 장사지냈다고 한다. 그래서 아들의 효심을 생각해서 이색의 묘소 앞에 셋째아들의 묘를 마련하여 부자간이 영혼을 함께하고 있어 조금은 위안이 된다. 묘소 앞에 서서 머리 숙여 충절을 빌었다. 장명등, 마석, 문인석, 상석, 망주석 등이 있다. 사람이 늙으면 검버섯이 생기는 것처럼 장명등 마석 문인석에 검은 이끼가 끼어 오랜 세월이 지났음을 알 수 있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 개국 후 인재를 무척 아꼈다. 왕이 내리는 벼슬을 거역하여 독주마시고 배안에서 생을 마감했다니 너무 안타깝고 허무한 마음이 든다.
충남 서천군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된 한산모시의 고장이다. 그리고 이곡(李穀)과 이색(李穡) 이종학, 이자, 이개, 이종덕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는 위패를 모신 문헌서원이 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0년 광해군이 문헌서원이란 사액을 받았으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자 그 자리에 단(壇)을 설치하고 분향하였다고 한다.
기린산 기슬에 자리잡은 묘소는 풍수적으로 빼어나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묘소주변 넓은 잔디밭, 고풍스런 콩 담장, 문집판에서 풍겨 나오는 묵향, 붉은 소나무에서 흘러나오는 신선한 바람이 머리를 스친다.
참고 문헌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문족문화대백과사전’
* 서천군 문화공보실 ‘내고장 문화유적 총람’
* 도봉문화원 ‘제184차 문화탐방 인문학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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