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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유래

우리면소개 우리마을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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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이전(朝鮮時代以前)에는 인적이 드물었던 해안지대였다.

비인현(庇仁懸)의 서쪽이 되므로 서면(西面)이라고 불렀으나 그 보다 조선시대 세종(世宗) 이후에는 도두음곶(都豆音串)으로 알려졌던 지역이다. 부락의 형성도 고려시대로 보며 집성부락 즉 씨족이 모여 사는 부락의 형성은 400년전으로 주축하는 지역이다. 1600년 후반기부터 수군의 진영 즉 마량진(馬梁鎭)이 태동되면서 갑자기 급속도로 정착인구가 늘어났던 지역이다.

집성부락 대성(大姓)으로는 김녕김씨(金寧金氏) 경주이씨(慶州李氏) 진주강씨(晋州姜氏)가 있으며 청주한씨(淸州韓氏) 해주최씨(海州崔氏)도 그 뒤를 이은다. 서면에는 김녕김씨 380여호 경주이씨 300여호 진주강씨 100여호 해주최씨 50여호 청주한씨가 30여호 잔재해서 집성부락을 이루고 있다.

개야리 (介也里)

조선시대말기에는 비인군 서면(西面)의 지역으로서 지형이 개의 목처럼 생겼으므로 개목 또는 개야목 개묵이라 불렀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에 개야리(介也里)라해서 서천군에 편입되었다. 김녕김씨(金寧金氏)가 많이 살며 그 집성부락과 해주오씨(海州吳氏)의 집성부락도 있다.

금배

금암(金岩) 금바위라고도 부른다. 마을에 금바위라고 부르는 바위가 있으므로 그리 부른다.

난말

마을이 큰마을 바깥쪽에 있으므로 난말이라고 부른다.

모시래

마을이 모래사장을 끼고 있어서 모시래 모시래라고 불러온다.

도둔리 (都屯里)

비인군 서면의 지역으로서 군사가 주둔하였던 곶이므로 도둠곶 도둔고지 도두음곶 도둔(都屯)이라고 불렀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에 도둔리라 해

분말

합전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이 지역에서 오래된 마을집이 있어서 구말이라고 부르다가 변하여 분말이라고 부른다.

모간나다리

합전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물이 쓰면 튀어나오는 섬이 있고, 물이 들어오면 물속에 잠기는 섬이 있는 즉 모래톱이 있는 마을이라 모간나다리라고 부른다.

원두리 (元頭里)

비인군 서면의 지역으로서 산형의 머리쪽이 되므로 원두리(元頭里) 원두(元頭)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에 원두리라 해서 서천군에 편입되었다. 광주안씨(廣州安氏) 연일정씨(延日鄭氏)의 집성부락도 있었다.

당너머

당제를 지내는 신당너머에 마을이 있으므로 당너머라고 부른다.

매재

옛날부터 매가 많이 날아드는 산아래 마을이 있으므로 매재라고 부른다.

벌뚝

들판 뚝근처에 마을이 있으므로 벌뚝이라고 부르는 마을이다.

장개뜸

장포(長浦)라고도 부른다. 긴 갯가를 끼고 마을이 있으므로 장개뜸 장포라고 부른다.

재뜸

언덕아래 즉 재(재)를 끼고 마을이 있으므로 재뜸이라고 부른다.

칠성바위

칠성암(七星岩)이라고도 부른다. 칠성바위라는 바위가 있는 마을이라 칠성바위 칠성암 이라고 부른다.

월리 (月里)

비인군 서면의 지역으로서 지형이 달(산)의 목처럼 생겼으므로 달목 다리목 또는 월항(月項) 월항리(月項里)라 불렀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에 월리(月里)라해서 서천군에 편입되었다. 김녕김씨(金寧金氏)의 집성부락과 전주이씨(全州李氏)의 집성부락도 있다.

선녘동내

아래뜸이라고도 부른다. 달목아래에 마을이 있으며 서쪽에 마을이 있으므로 서녘동내 선녘동내라고 부른다.

안태

마을 안쪽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 안태라고 부른다.

월호리 (月湖里)

비인군 서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에 월하(月下)와 호동(狐洞)을 이름을 딸 때 호(狐)를 호(湖)로 고쳐서 월호리라 하여 서천군에 편입되었다. 진주강씨(晋州姜氏) 40여호의 집성부락이 있다. 이곳에 정착한 진주강씨의 중시조는 강선도(姜善道)이고 14대 400여년을 거주하는 성씨다.

유산 (由山)

산이 아름답고 땅이 기름져서 산과 들이 조화를 이루는 마을이다. 유산(由山)이라고 부른다.

동지리 (冬至里)

한산군 동상면(東上面)의 지역으로서 산의 줄기가 동쪽으로 뻗어있는데 마을이 되었으므로 동지매 또는 동지(冬至)라 부르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 동지리라하여 서천군에 편입되었다.

화동 (禾洞)

벼가 잘 되는 마을이라 화동이라고 부르고 옛날 숯을 구었던 마을이라 숯굴 이라고도 부른다.

월하성 (月下城)

월하성(月下城)이라고도 부른다. 달빛아래 신선이 노는 것 같은 마을이라 해서 신성지로 꼽히던 마을이다.

큰장굴

장동(長洞)이라고도 부른다. 마을이 길게 퍼져있다 해서 장동 큰마을이라 큰장굴이라고 부른다.

호동 (狐洞)

호동(湖洞)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옛날에는 여우가 많이 살았던 마을이라 한다.

주항리 (酒缸里)

비인군 서면의 지역으로서 이곳은 수렁이 많았고 마을 지형이 술 항아리 같다 하여 주항동(酒缸洞) 또는 수항골 이라고 부르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에 주항리로 서천군에 편입되었다. 이곳은 청주한씨(淸州韓氏) 시조로부터 18세손 한흥운(韓興雲) 휘(諱) 낙향하여 청주한씨의 집성촌으로 400여년 간 거주하는 대성 마을이다.

값진모랭이

갑진모랭이란 뜻은 마을에 있는 모롱이의 산명이다. 조선시대에 군사가 주둔할 때에 갑 을 병진을 나눌 때 감지로 택해서 갑진(甲鎭)이라고 부르던 모롱이의 산부근에 마을이 생기므로 그리 부르게 된 마을이다.

유포

귀내 공암이라고도 부른다. 마을앞에 포구가 있으며 바위가 있고 바다 안쪽에 마을이 있으므로 귀내 공암 유포라고 부른다.

새암구석

마을이 한편 구석진 곳에 있으며 좋은 샘이 있으므로 새암구석 정동(井洞)이라고 부른다.

틈개

탄동(綻洞) 홍원이라고도 부른다. 바다를 끼고 앞이 넓게 트인 곳에 마을이 있으므로 틈개 탄동 홍원이라고 부른다.

창미끝

동북쪽에서 내려오는 푸른 산의 끝에 있다는 산이 창미끝이라고 부르는 산이고 그 산이 있는 마을이라 창미끝이라고 산명따라 부르는 마을이다.

마량리 (馬梁里)

비인군 서면의 지역으로서 조선시대말기 효종(孝宗) 7년(1656)에 남포현에 있던 마량진을 이곳에 옮겨 왔으므로 마량진 또는 마량이라고 부르게 된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에 마량리라 해서 서천군에 편입되었다. 기계유씨(杞溪兪氏)의 집성촌이 있으며 경주최씨(慶州崔氏)의 집성부락도 있었다.

안도둔

내도둔(內都屯)이라고도 부른다. 도둔마을 안쪽에 마을이 있으므로 그리 부른다.

마량(馬梁)

조선시대에 마량진이 있던 마을이다.

부사리 (扶士里)

비인군 서면의 지역으로서 은자(隱者)들이 탐내는 곳이라 하여 부사먼이라고 부르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에 부사리라 해서 서천군에 편입되었다. 장수황씨(長水黃氏) 경주이씨(慶州李氏)의 집성부락이 있었다.

부사먼

일명 부사리라고도 부른다. 조선시대 세조(世祖)때부터 자주 일어나는 사화때마다 선비들이 한양을 버릴 때 탐내던 지역으로 전원에 묻히는 선비들이 이곳에 머물르면 화를 입지 않는다 하여 속칭 은자들이 탐내는 지역이라 부사먼이라고 부른다.

장잣골

옛날에 장자가 살았다 해서 장잣골이라고 부른다.

신합리 (新蛤里)

비인군 서면의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에 신촌(新村)과 합전(蛤田)의 이름을 따서 신합리라 하여 서천군에 편입되었다. 해주최씨(海州崔氏)와 나주나씨(羅州羅氏) 10여호의 집성부락이 있다. 경주최씨(慶州崔氏)도 많이 산다.

선도래

선돌(先乭)이라고도 부른다. 마을에 선돌이 있으므로 선돌 변하여 선도래라고도 부른다.

합전 (蛤田)

옛날에는 마을앞까지 조수가 드나들어 조개가 많았다 해서 합전이라고 부른다.

청주한씨 (淸州韓氏)

청주한씨의 집성부락이 있다.

갓굴

마을 가에 마을이 있으므로 갓굴이라고 부른다.

건네말

들건너에 마을이 있으므로 건네말이라고 부른다.

송림터

옛날에 소나무숲이 우거졌던 자리에 마을이 생겼으므로 송림터라고 부른다.

배다리

주교(舟橋)라고도 부른다. 옛날에는 배가 정박했던 곳에 마을이 생겼으므로 배다리 주교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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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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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9-10-04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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